1.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나’를 먼저 인정하는 시간
저는 퇴근 후의 제 모습을 하루하루 다르게 느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떤 날은 아무리 작은 행동조차도 버겁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머리로는 씻고, 밥 먹고, 정리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그 어떤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어떤 때는 그냥 옷 입은 채로 방바닥에 쓰러져서 멍하니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예전의 저는 이런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다그치는 방식으로 대응하려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아무것도 하기 싫음’이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니라, 그날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보내는 자연스러운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이런 상태를 억지로 바꾸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였습니다.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은 감정은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먼저 알려주는 것입니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나면, 저는 잠시 가만히 멈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불을 켜지도 않고, 핸드폰도 보지 않은 채 현관 근처에서 제 감각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지켜봅니다. “오늘은 많은 말을 해서 피곤했구나.” “집중하느라 머리가 꽉 차 있었구나.” “몸이 지금은 쉬고 싶은가 보다.” 이런 생각들이 조용히 떠오르기도 합니다. 감정을 분석하거나 평가하기보다, 그저 ‘지금의 나’에게 잠시 귀를 기울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퇴근 후의 저에게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인정하는 순간,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해야 할 일을 강제로 끌어오던 긴장감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았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압박도 조금씩 흐려졌습니다. 그렇게 퇴근 후의 처음 몇 분을 오롯이 저에게 허용하는 것이, 다음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 첫 단추가 되었습니다.

2.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시작하는 최소 루틴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저는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할 수 있을 만큼만 움직이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때의 포인트는 움직임의 크기를 최대한 작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해야 할 일을 리스트로 만들어 큰 목표를 세우곤 했는데, 그 방식은 결국 하루를 마무리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몸이 움직일 수 있을 만큼의 아주 작은 행동부터 선택합니다.
제가 자주 하는 첫 번째 작은 움직임은 조명을 켜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불을 켜지 않고, 그냥 집 안에서 가장 부드러운 조명 하나만 켭니다. 따뜻한 등이 켜지면 공간이 조금 밝아지고, 동시에 마음의 낯섦도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조도는 생각보다 제 감정을 많이 바꿔 주었고, 공간이 저를 부담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맞아주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저는 ‘가볍게 앉을 자리 하나 만들기’를 합니다. 집이 조금 어질러져 있어도 전체를 정리하려 하지 않고, 단 한 곳—저녁을 보낼 작은 공간만 마련합니다. 예를 들어 소파 한 부분의 옷을 치우거나, 테이블 위에 놓인 컵 하나만 설거지하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행동입니다. 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내가 오늘을 보낼 자리를 하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는 것입니다. 따뜻한 물을 한 모금씩 마시면, 하루 동안 딱딱해졌던 몸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의 온도와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이 오늘 하루를 무사히 버텨낸 제 안쪽을 부드럽게 보듬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짧은 순간은 몸이 다시 ‘나를 돌볼 준비’를 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최소 루틴은 움직임 자체보다 ‘움직임의 출발점’을 만드는 데 더 가깝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무리하게 뭘 해내기보다, 몸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흐름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작은 행동 하나가 이어지고, 이어진 작은 행동이 하루의 마무리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3. 저녁 시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드는 제 나름의 회복 루틴
퇴근 후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저는 ‘회복 루틴’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 루틴은 일을 더 하기 위함도 아니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저녁이라는 시간을 부담 없이 지나갈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이 루틴들은 날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오늘 하루의 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조용한 음악을 틀어둡니다. 너무 선명하거나 에너지가 강한 음악보다, 멜로디가 잔잔하고 흐름이 부드러운 곡을 선택합니다. 음악이 공간을 채우면 정적 속에서 더 커지는 생각들이 정리되고, 마음의 속도도 조용히 느려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두 번째로 스트레칭을 아주 천천히 진행합니다. 하루 종일 긴장했던 어깨나 허리 부근을 부드럽게 늘려주다 보면, 몸이 조금씩 저녁 시간의 무게감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트레칭의 목적은 유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는 것’입니다. 몸이 살짝 이완되면 마음도 조용히 안정되는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세 번째로 저는 ‘속도 낮추기’를 합니다. 잠들기 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더라도, 최대한 천천히 행동합니다. 이를 닦는 속도, 화장실 가는 속도, 조명을 끄는 속도까지도 부드럽게 낮춥니다. 마음의 속도가 높을 때는 작은 행동 하나도 거칠게 느껴지지만, 속도를 줄이면 몸이 저절로 편안해지는 경험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 과정은 잠들기 위한 루틴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오늘을 천천히 건네주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회복 루틴을 통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밤’이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습니다. 삶의 리듬이 매일 같을 수 없듯, 에너지의 흐름도 매일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 인정이 저녁 시간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이런 날을 ‘게으른 날’로 바라보지 않고, 오히려 제 몸과 마음이 조용히 쉬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그 작은 흐름 안에서 저는 제 감각을 더 잘 돌볼 수 있었고, 다음 날의 나에게도 더 따뜻한 출발을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