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만히 멈춰 있는 순간을 먼저 인정해 주는 시간
저는 평소에는 일정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편이지만,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동시에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들이 떠오르는데도 손이 잘 움직이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몸이 쉽게 반응하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예전의 저는 이런 상태가 오면 ‘오늘 왜 이러지? 나 왜 이렇게 느리지?’ 하고 스스로를 다그치거나, 빨리 다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조급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이런 감각이 찾아오는 순간을 억지로 밀어내려 할수록 오히려 움직이기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의 저는 무기력함을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인정해야 하는 감각’이라고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무기력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나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제 상태일 뿐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무기력할 때 저는 아주 단순한 행동부터 시작합니다. 바로 멈추는 것입니다. 모든 자극을 잠시 내려두고,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자리의 느낌, 손의 온도, 몸이 기대고 있는 표면의 촉감 등을 천천히 느껴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가 어떤지 quietly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만히 멈춰 있는 짧은 순간은 놀랍게도 제 마음에 작은 틈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틈이 생기면 그다음 움직임이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 시간을 ‘오늘의 속도를 체크하는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날은 평소보다 천천히 움직여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날은 잠시 멈춰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무기력함은 이런 신호를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이 감각이 찾아오면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제 속도가 잠시 느려졌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하면 움직임은 더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2. 아주 작은 움직임을 만들며 몸을 깨우는 과정
무기력할 때 필요한 것은 큰 행동이 아니라,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였습니다. 저는 어떤 행동을 시작하려고 하면 부담이 커져서 오히려 손이 더 안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행동의 크기를 아주 작게, 그리고 부담 없이 줄여보는 방법이 저에게 가장 잘 맞았습니다.
제가 가장 자주 하는 작은 움직임은 자리에서 살짝 몸을 비틀어보는 동작입니다. 허리를 좌우로 천천히 돌리면서 등이 굳어 있는지 확인하고, 어깨를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리는 식으로 긴장을 풀어줍니다. 이 동작은 운동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무기력할 때 제 몸을 깨어나게 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습니다. 특히 어깨가 가볍게 풀리면 몸 전체의 답답함이 함께 풀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자주 하는 행동은 ‘자리 이동하기’입니다. 책상에서 의자로, 의자에서 침대 모서리로, 혹은 창가 쪽으로 단 1~2미터만 움직여도 분위기가 바뀌고 몸의 상태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무기력할 때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더 깊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작은 이동이 생각보다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목적 없이 단순히 ‘앉는 자리만 바꾸기’만 해도 새로운 호흡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을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책상 위 물건을 아주 살짝 정리해 보거나, 컵을 싱크대에 옮기거나, 옷의 먼지를 털어주는 동작처럼 아주 사소한 행동부터 시작합니다. 이 작은 행동들은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몸이 ‘움직일 수 있다’는 감각을 다시 찾게 해 주었습니다. 무기력한 날에는 큰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몸에 아주 작은 불씨 하나 켜기’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저는 움직임이란 반드시 크거나 특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히려 무기력한 날에는 움직임의 크기가 작을수록 더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한 번 움직이면 그다음 움직임이 조금 더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몸을 깨우는 작은 루틴을 만들면서, 저는 무기력이 찾아올 때 스스로를 조금 더 부드럽게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움직임이 이어지도록 나에게 여유를 허락하는 방식
무기력한 날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저는 그 움직임이 금방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한번 움직였으니 뭔가 더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면서, 큰 행동을 계획했다가 금세 지쳐 다시 멈춰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움직임을 확장시키기보다, 그 움직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환경과 리듬을 만들려고 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오늘 해야 하는 일의 기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무기력한 날에는 평소처럼 많은 일을 해내기 어렵기 때문에, 큰 목록 대신 아주 작은 하나의 행동만 정합니다. 예를 들어 물 한 잔 마시기, 이메일 하나만 읽기, 세탁물 한 가지 정리하기처럼 작은 목표를 세웁니다. 이 작은 목표를 달성하면 성취감이 생기고, 그 성취감이 다음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또 저는 움직임이 멈추지 않도록 ‘조용한 리듬’을 유지합니다. 갑자기 너무 큰 행동을 하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하려 하면 금방 지쳐 움직임이 끊겼습니다. 그래서 저는 움직임의 강도를 일정하게, 그리고 부드럽게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잠깐 산책을 했다면 바로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고, 돌아와서 따뜻한 물을 마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은 행동과 작은 휴식을 번갈아가며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무기력한 날의 저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전에는 무기력한 날이면 ‘왜 이렇게 못 움직이지?’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이런 생각은 오히려 몸과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런 날의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늘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마음의 부담을 줄이자, 오히려 움직임이 더 오래 이어졌습니다.
이 루틴들을 실천하면서 저는 무기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무기력 속에서도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 변화가 아니더라도, 이 작은 움직임들이 하루의 흐름을 바꾸는 데 충분했습니다. 저는 이제 무기력한 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날의 저를 더 부드럽게 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